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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프트 제도

드래프트 제도, 농구 시합 모습

신인선수는 왜 구단을 선택할 수 없는가(드래프트 제도)

2001년 1월 어느 날,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신인선수선발(드래프트)행사장. 한국프로농구 관계자들이 호텔 행사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엊그제는 프로농구 올스타전이 축제처럼 벌어졌고 지금 프로선수들은 소위 ‘올스타전 브레이크’ 라는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각 팀 감독, 코치 그리고 구단 프런트는 숨가쁘게 달려온 리그의 중반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이내 경기보다도 더 팽팽한 긴장감으로 숨이 막힐 것 같은 행사장에서 마음을 졸이고 있다. 김주성, 정훈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쟁쟁한 대학농구 선수들을 선발하기 위해 각 구단 관계자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틀 간 선수의 기량을 점검하는 트라이아웃(Try-out) 테스트를 거친 뒤 프로에 드래프트되기를 기다리는 선수와 그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어 KBL(한국농구연맹)에서 드래프트와 관련된 설명을 한다. “…프로농구 구단에 의하여 선발(드래프트)되는 신인 선수는 반드시 그 해당 구단에 입단하여야 하며 만일 선수가 이를 거부하면 향후 5년간 KBL 선수로서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모 신문사 기자가 질문한다. “선수가 원하지 않는 구단에 지명되어도 아무런 항변도 못하고 무조건 그 구단에 입단하여야 한다면 이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무시한 부당한 제도 아닙니까?” KBL 측에서 답변한다. “그것은 프로스포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질문입니다. 프로리그가 성공하려면 재미있는 경기를 하여야 합니다. 우수한 선수가 한 팀에 집중되지 않고 고르게 분산되어 매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치열한 승부가 펼쳐질 때 리그는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드래프트는 돈 많은 부자 구단이 우수 선수를 싹쓸이하지 못하도록 하고 상대적으로 형편이 열악한 구단도 우수 신인선수를 충원할 수 있게 하는 전력평준화 제도입니다.” 다른 기자가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프로스포츠가 성공하려면 좋은 선수를 많이 확보하여 구단의 지명도와 가치를 높여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축구에서 FC 바로셀로나, 인터밀란 등과 같은 프로 구단은 세계적인 선수를 많이 확보하고 있기에 명문구단으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드래프트제도는 자칫 의도와는 다르게 하향 평준화를 자초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네 그렇습니다. 일정 부분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리그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구단이 프로스포츠 자체를 주요 비즈니스 컨텐츠로 삼고서 구단 경영만으로도 충분히 흑자를 실현할 수 있는 경우에만 해당되는 얘깁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프로스포츠 산업의 환경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드래프트 제도는 구단들이 우수 신인 선수를 둘러싸고 무한경쟁을 하는 것을 막고 우수 선수를 확보하기 위해 계약금, 입단금 등의 형태로 과도한 지출을 하지 않도록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보다 시장 규모가 훨씬 큰 미국 프로농구 NBA가 이를 합리적 경영 모델로 채택하여 성공적으로 리그를 운영하고 있고, 미국프로축구(MLS, Major League Soccer)도 드래프트 제도를 채택, 시행하고 있습니다. 더이상 질문 없습니까?” 아무도 질문하지 않자 바로 드래프트 순서로 들어갔다.

드래프트는 10개 팀을 3개 그룹으로 나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1그룹은 드래프트 순서 1순위부터 4순위까지를 정하는 것으로 전년도 정규리그 성적을 역순으로 해서 10위 팀에 흰색 구슬 40개(40%), 9위 팀에 노란색 구슬 30개, 8위 팀에 파란색 20개, 7위팀에는 빨간색 10개를 각각 부여하여 총 100개의 구슬을 추첨기에 넣고 잘 섞은 다음 추첨하는 것이다. 추첨기는 일본에서 제작한 것으로 투입구에 구슬을 넣고 뒤로 돌리면 구슬이 섞이기만 하고 나오지 않으나 앞으로 돌리면 단 하나의 구슬만 나오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하여 만약 흰색 구슬이 처음 나오면 전년도 꼴찌 팀이 1순위로 선수를 선발할 수 있는 것이다. 2그룹은 전년도 성적 6위와 5위를 차지한 두 팀이 각기 다른색의 구슬 60개와 40개를 넣고 추첨하여 같은 방법으로 드래프트 순위 5, 6위를 정한다. 그리고 3그룹에서는 전년도 정규리그 4위, 3위, 2위, 1위 팀이 역순으로 드래프트 순위 7, 8, 9, 10위가 된다.

드디어 첫 번째로 가장 우수한 선수를 선발할 수 있는 특권을 뽑는 드래프트 1순위를 정하는 구슬 추첨 시간이 다가왔다. 모든 언론에서는 대학 농구에서 발군의 기량을 가진 김주성 선수가 1순위로 뽑힐 것이 확실하며 이 선수를 선발하는 구단은 다음 시즌 우승권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진행자가 단상에서 구슬을 섞고 돌리는 순간, 장내는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아 추첨기 속의 구슬 소리만 확성기 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딸그락, 첫 번째 구슬이 나왔다. 모두 무슨 색인지 궁금해하는 가운데 사회자의 발표가 이어진다. “드래프트 1순위 구단은 원주 TG 엑써스 구단입니다.” 순간 TG 엑써스 구단 관계자들이 앉은 테이블에서는 흥분 섞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농구 선배이자 불세출의 스타 허재 선수 겸 코치는 만세를 불렀다. 다른 쪽에서는 술렁임과 실망이 장내에 교차했다. 이렇게 모든 구단의 드래프트 순위가 정해지고 선수 선발 절차에 들어갔다. 이어진 사회자의 진행 “첫 번째 선수를 선발할 권리를 받은 TG 엑써스팀의 전창진 감독께서 드래프트할 선수의 이름을 호명하겠습니다. 시간은 3분 이내입니다.” 전창진 감독이 단상 앞 마이크로 걸어나왔다. 그에게는 3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숨돌릴 틈 없이 내뱉는 그의 발표 “김주성 선수를 선발합니다.” 다시 한 번 장내는 박수와 환호로 뒤덮였다.

2미터 17센티의 인간 장대 김주성 선수가 무대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감독과 허재 선수는 김주성 선수에게 구단 모자를 씌운 뒤 팀 유니폼을 입히고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았다. 한편 행사장 한 켠에는 부모님이 서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장애와 가난으로 아들의 성장기 때 남들처럼 먹이지 못해 미안해 했고, 프로무대에 진입하는 아들을 대견해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들이 구단 재정이 풍부하고 전통 있는 명문 구단에 선발되지 못한 데 따른 진한 아쉬움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이 무렵 일부 언론은 TG 엑써스 구단의 어려운 재정 상태를 보도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드래프트 제도를 통하지 않고서 이런 대형선수를 입단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구단으로서는 이 얼마나 대단한 횡재인가!

이튿날 신인 김주성 선수와 백전노장 허재 선수의 인터뷰 기사가 각 언론에 보도되고 있었다. 김주성 선수의 말. “지난 시즌은 TG 엑써스 구단의 성적이 하위권이었지만 제가 입단하는 다음 시즌에는 챔피언에 도전해 보겠습니다.”이어진 허재 선수의 인터뷰. “사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김주성 선수가 우리 팀에 선발되어 가세함에 따라 후배와 함께 반드시 챔피언 반지를 끼고 코트를 떠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은퇴의사를 번복한 것이다.

드래프트 제도는 프로리그 입장에서는 재정이 그리 넉넉하지 못한 구단도 우수 선수를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장점과 아울러 전 시즌 하위 성적을 거둔 구단에게 전력 보강의 기회도 제공하여 전체적으로는 팀 간 전력 평준화를 이루게 하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드래프트되는 신인선수와 구단 입장에서 모두 불만족스런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즉 선수에게는 자기가 입단하기를 꿈꾸고 희망하던 팀에서 활약할 기회가 제한되고, 구단 입장에서는 진정한 프로스포츠 팀으로서 클럽 시스템을 지향하며 우수한 유소년 선수를 조기에 발굴하여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프로그램으로 지원, 육성시킬 의욕을 반감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선수를 육성하였다 하더라도 드래프트 제도로만 신인 선수를 충원한다면 구단으로서는 그 선수를 반드시 해당 구단에서 선발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리그 전체를 조망할 때, 각 팀의 균형적 발전과 안정적인 리그 운영을 위해서 드래프트 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 프로스포츠의 궁극적 소비자는 팬이다. 팬은 대부분의 팀이 엇비슷한 전력으로 치열한 승부를 펼치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개별 팀은 많이 이기기를 원하고 그 결과 리그의 챔피언이 되기를 원한다. 스포츠 세계에서 승리하는 팀은 강팀이고 강팀은 강한 브랜드를 만들어 낸다. 승리는 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주요 요소이긴 하나 맹목적인 승리는 그 자체만으로 좋은 팀이란 이미지를 담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프로스포츠 리그에서 어떤 팀이 우수 선수를 대거 확보하여 계속 연승을 하고 상대팀과의 경기 결과가 불 보듯 뻔하여 어쩌다 지는 것이 오히려 뉴스가 된다면, 설령 그팀이 리그의 최종 챔피언이 되었다 한들 팬과 언론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는 마치 가장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엄청난 투자를 하였으나, 정작 그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자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것과 같다. 이럴 경우, 소비자인 팬은 특정 경기에만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리그 전체를 외면하게 된다.

다시 김주성 선수의 얘기로 돌아가자. 드래프트란 관문을 통과한 김주성 선수의 가세로 각 언론, 미디어는 늘 약체로 지목되었던 TG 엑써스를 강팀으로 분류하면서 2002~2003 시즌 한국 프로농구의 판도가 바뀌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었다. 엎치락뒤치락 하던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경기를 끝내고 마침내 진정한 시즌의 승자를 가리는 챔피언 결정전 6차전이 벌어졌다. 원주 TG와 대구 동양간의 경기는 전반 1, 2쿼터를 마치자 원주가 무려 20점을 뒤지고 있었다. 이전까지 3승 2패로 치열하고도 팽팽했던 승부의 추가 상대팀에게 넘어가는 듯하였다. 그러나 3쿼터 들어서자마자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3점슛이 폭발하며 승부를 점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을 승리로 장식하던 날, 대구 실내 체육관에서는 신인 김주성 선수와 그를 선발한 감독 그리고 구단 관계자가 모두 얼싸 안고 있었다. 챔피언이란 것은 늘 ‘다른 팀의 잔치’ 쯤으로 여겨 왔던 원주 TG. 그날 그들은 ‘We are the Champions’ 란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드래프트 제도’ 라는 신이 주신 선물에 감사하며 코트를 눈물로 적시고 있었다.

참고 : 프로스포츠의 경쟁력: 전력평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