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아닌 생존, “빅리그에서의 커피 한잔”

2018년 9월 캔자스시티 로열스 소속의 콜롬비아 출신 유망주 메이브리스 빌로리아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그는 홈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는데 2타점 2루타로 팀 승리를 이끌어 경기 수훈 선수로도 선정되었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부모님께 빅리그에 올라가게 되었다고 연락드렸더니 믿지 않으시더라 “라고 말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선수 명단이 확장되는 9월에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다만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각처럼 흔히 주어지지는 않는다.  매일 30개 구단 수백 명의 선수들이 열전을 펼치다보니  메이저리거의 희소성에 둔감해지곤 하는데 실제 마이너리그에서는 단 한 번의 빅리그 호출조차 받지 못한 채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경우가 대다수 이다.

미국 내에 등록된 고교 야구선수는 대략 45만명에서 50만명으로 추산되고, 이중 대학 야구팀에 진학하는 비율은 5 %에서 6 %, 메이저리그 구단에 직접 드래프트되는 비율은 0.5 %에 불과하다.

정식 계약을 맺고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하더라도 상황이 나아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이렇게 마이너리그에서 빅리그로 호출을 받은 선수중에서 단 한경만 뛰고 사라진 선수들을 구분하는 표현이 바로 ‘커피 한잔’ 이다.

폴딕슨의 <야구사전>에 서는  유망주들이 빅리그에 잠깐 머문 경험이 말 그대로 커피 한잔 마시는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는 점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어쨌거나 여유나 낭만을 떠올릴 법한 따뜻한 커피의 이미지와 정반대에 가까운 표현이다.

메이저리그 통계 전문 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는  이런 ‘커피한잔’ 들을 따로 모아 두었다. 2021년까지 타자 1522명에 투수 716명 각자 굴곡진 사연을 간직하고 있겠지만 수많은 ‘커피 한 잔’ 중에 유독 이색적인 기록을 가진 선수라면  2002년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의 론 라이트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마이너리그 시절 150 미터가 넘는 비거리의 대형 홈런을 몇 차례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2002년 4월 텍사스레인져스와의 원정경기를 앞두고 메이져리그에 승격 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만 26세의 비교적 적지 않은 나이였다.  팀에 합류하고도 이틀을 벤치에서 보낸 론 라이트는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의 주전 3루수 제프 시릴로가 경기 전 타격 훈련을 하던 중 튄 공에 맞아 다치는 바람에 갑자기 선발 라인업에 투입 되었다.

그리고 긴장할 틈도 없이 출전해 3차례 타석에 섰으나 한 경기에서 아웃 카운트 6개라는 원치 않는 흑역사를  기록했다.

론 라이트는 첫 타석에서 가볍게 3구 삼진을 당했고, 두번째 타석에서는 삼중살을 당하고 말았다.  세번째 타석에서는 병살타를 쳤고 네번째 타석에서 대타로 교체되어 라이트의 하루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삼진’, ‘삼중살’, ‘병살타’ 라니 보기 드문  ‘3종세트’를 단 하루 만에 완성한 뒤 바람처럼 사라졌다. 가족들에게 경기장 방문을 만류했던 것이 천만다행 이었다.  이후 론 라이트는 부상으로 조기 은퇴하면서 다시는 메이져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

15년 뒤 인터뷰에서 그는 “결과를 떠나 그 무대에 섰던 기억이 행복하고 감사하다 “는 소박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일부 팬들의 기억과는 달리 그는 그날의 일을 굴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커피 한 잔’ 은 이색 기록이나 특이한 경력을 가진 선수들을 언급할 때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수 있다.  그래도 결과만 놓고 보면 마냥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미 빅리그 무대를 밟아본 극소수에 포함되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애덤 그린버그가  데뷔 타석에서 공에 맞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의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유튜브에  올라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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